역사 속의 지리산(09)장승의 탯자리 지리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7-29 12:55 | 1,980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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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지리산(10)장승의 탯자리 지리산
조선 백성들의 버팀목이자 동반자

‘낙태약 된다고 저 장승 코를 어제 밤 비 온 뒤 또 글거갔소/오목오목 들어간 고무신 자국 키 작은 여자가 발버팀쳤소/우뚝하던 그 코가 없어지고도 그 자리가 한 치나 패어드렀네/캄캄한 밤중 타서 찬 칼을 품고 저 장승 코 베려 달려들 때에/약한 맘 얼마나 발발 떨었노 아니다 대담하지 그 처녀아기’ <박금의 장승 민요 ‘장승코’>

장승의 주먹코를 자세히 보면 시커먼 손때가 반질반질하다. 옛 사람들은 아들을 얻고자 장승코를 떼어다 갈아서 청정수에 타 마셨다고들 하니 어찌 그 코가 제대로 남아있겠는가. 아들을 못 얻으면 장승의 벌이요, 얻으면 장승의 은덕이라 여겼다. 그렇게 장승은 조선 백성들의 삶의 이정표이자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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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양 벽송사 목장승
장승은 상단에 사람의 얼굴 형상이, 몸통에는 그 기능을 나타내는 글이 써 있다. 마을 입구나 사찰 앞에서는 수호신으로, 국도변의 역에서는 지역간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 역할을 했다. 영호남지역에서는 현재 ‘벅수’혹은 ‘법수’라고도 부른다.

그 중 지리산 주변지역의 장승들은 한 쌍씩 어우러져 있고 얼굴형은 입체적이다. 툭 떨어질 것 같은 부리부리한 눈, 떡 뒤집어진 입술사이로 쑥 드러나는 치아, 당기고 싶은 긴 타래수염은 잡귀가 지나다가 놀랄만 하게 생겼다.

종류도 목장승보다 돌장승이 많다. 또한 명문이 적혀있는 것도 특징인데 마을 장승에는 수호신의 기능을 나타내는 명문이, 사찰장승에는 불법수호와 경계 기능을 나타내는 독특한 명문이 적혀있다.

지리산 지역 주변의 장승은 15기인데 그 중 남원에만 10여 개에 이른다. 남원은 삼국시대 이래로 영토분쟁이 잦아 옛 사람들은 장승을 통해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지리산 주변 15기, 남원만 10개

그 중 운봉면 서천리 돌장승 2기는 남원 장승 중 외모가 가장 뛰어나다. 방어대장군, 진서대장군 2기 모두 남상이고 형태도 닮았다. 벙거지형 모자에 둥글고 큰 눈을 부라리고 콧방울은 좌우로 넓게 벌어져서 무지하게 보이고 벌린 입은 굵은 윗니가 입술 밖으로 나와 사납게 보인다. 채수염은 구불구불 길게 드리워졌다.

진서대장군은 중국에는 별로 없는 장군명이며 우리나라 장승류에도 유독 진동, 진북, 진남은 없고 진서대장군만 있다. 그 이유는 진서대장군의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장승과 벅수> 저자 김두하 선생은 우리나라의 서쪽인 중국에서 오는 호귀마마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국내 대장군의 명문만으로 별 효과가 없자 역으로 중국 황제들을 진서대장군으로 봉하해 마을에 세웠다고 전해 우리 선비들의 해학이 엿보인다.

함양군 벽송사 들머리에는 밤나무로 만든 장승 2기가 마주보고 있다. 한 장승은 멀쩡한데 한 장승은 머리가 없다. 1969년 산불이 났을 때 머리가 타 버려 숯이 되었고 코도 떨어져서 참담한 꼴이 됐다.

명문 적혀있는 돌장승 많아

통나무를 깊이 파 만든 장승은 조각수법이 뛰어나 전남 순천 선암사 입구 목장승과 더불어 명공의 작품으로 꼽힌다.

장승은 조선전기에서 후기로 들어오면서 노표에서 수호신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 조선초기에는 중앙정부차원에서 국도 10리마다 세워 행인들의 여행길을 도왔고 조선후기에는 사찰의 수호신 역할을 했다. 조선후기 불교가 탄압을 받으면서 외부침략자가 들끓자 사찰 수호신인 장승을 모시기 시작한 것이다. 사찰 입구에 있는 천왕문의 사천왕상 등은 장승을 모방한 것이다.

그럼, 조선후기 사람들은 왜 마을 입구에 장승을 세웠을까. 백성들은 전란을 겪으면서 농토가 화폐화 되고 자연재해까지 겹쳐 기근에 시달린다. 지배층의 억압과 약탈에 견디기 힘든 지경에 전염병까지 들이닥친다. 사면초가 상황에서 농민들은 삶의 터전인 마을을 지키려 장승을 세웠던 것이다.

오늘날 미신쯤으로 폄하되는 장승. 하지만 고난한 삶을 감내해야 했던 조선후기 백성들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간절한 바람이었다.

도움말/강현구 광주광역시 문화재전문위원

[경남도민일보 박종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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