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지리산(15)화엄사 가람배치의 비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1-07-29 13:06 | 3,170 | 0

본문

역사 속의 지리산(15)화엄사 가람배치의 비밀
대웅전·각황전 절묘한 건축 ‘놀라워’


화엄사는 입구가 시원하게 열린 개방형이다. 그릇만큼 채워진다는 말이 있다. 화엄사를 창건한 스님들은 미래를 예견하면서, 이곳을 대총림도량으로 키우려고 했던가보다. 그들의 믿음대로 1500년이 지난 지금, 지리산 최대의 사찰이요 신앙적 중심지로 화엄사는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적 측면에서 보면, 화엄사는 풀기 어려운 의문 투성이의 가람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아보면 절묘한 건축기술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98619-2-157293.jpg  ▲ 지리산 화엄사의 각황전(왼쪽)과 대웅전(오른쪽).△보제루 동쪽을 돌아야 하는 이유

보제루 앞에 이르면 좌우로 두 갈래 길을 통해 중심마당으로 올라갈 수 있는데, 대부분의 참배객들은 오른쪽으로 돌아 올라가게 된다. 보제루의 동쪽을 돌아서 중심마당으로 진입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화엄사 전체 가람배치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 될 것이다.

화엄사는 대웅전이 주불전이다. 하지만 대웅전이 각황전보다 훨씬 작은 규모여서 외형적으로 차이가 심하다. 보제루 동쪽을 돌아나오면 대웅전이 먼저 보인다. 보제루를 동쪽으로 돌아서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이율배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보제루의 동쪽을 돌아 오르면 운고각과 적묵당 사이에 서게 된다.

대웅전, 2배 크기인 각황전과 동등하게 부각

이 지점은 중심마당의 남동쪽 모서리에 해당하며, 전체 가람을 바라볼 수 있는 이 곳은 각황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이다. 대웅전까지의 거리는 각황전까지의 절반에 불과하다. 2층 7칸의 큰 각황전은 멀리 보이고, 1층 5칸의 대웅전은 가까이 보인다. 각황전이 대웅전의 2배 정도의 크기지만, 거리에 반비례하는 시각적 차이를 이용하여, 결과적으로 두 개의 건물은 거의 비슷한 규모로 보이게 된다.

절대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2개의 건물을, 상대적 시각으로는 동등한 중심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대웅전-각황전의 입체적 역동적 구성

각황전과 대웅전을 동등한 중심 건물로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당에 놓인 두 5층 석탑의 위치에 주목해보자. 형태가 비슷한 이런 유의 쌍탑은 대웅전 앞 좌우에 대칭되게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화엄사의 두 탑 위치는 좌우로 나란하지도 않고, 대칭적인 거리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서탑이 동탑보다 앞으로 튀어 나왔고, 대웅전 중심에서 동탑보다 2배 이상 떨어져 서 있다. 형태는 유사하지만, 위치는 매우 비대칭적이다.

그러나 두 탑의 위치를 비대칭적으로 보는 관점은 대웅전 좌우를 기준으로 보았을 때이다. 보제루 동쪽, 이 곳을 시각점이라 부르자. 그 중요한 지점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장면을 볼 수 있다.

  198619-2-157294.jpg  ▲ 화엄사 배치도.평면도선 비대칭적…실제론 질서잡힌 공간으로 시각화

이 시각점에서 보면, 동탑은 대웅전에, 서탑은 각황전에 소속된 것으로 보인다. 동탑은 정확히 대웅전의 중앙에 놓인 것으로, 서탑은 각황전의 중앙에 놓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시각점 - 동탑 -대웅전이 일직선 상에 놓이고, 시각점 -서탑 - 석등 -각황전을 잇는 축선 역시 일직선을 이룬다.

마치 두 개의 1탑 1금당이 시각점에서 모여 있는 것과 같은 절묘한 양상이다. 이 역시 대웅전과 각황전을 동등한 두 개의 중심 전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장치이다.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평면적 형식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입체적이며 역동적으로 구성되었다. 따라서 평면도 상에서는 비대칭적이며 불규칙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정되고 질서가 잡힌 완전한 공간을 이룬다.

△긴 참배길 자연스런 이끌림

일단 대웅전 앞으로 유도된 참배객들은 전각들의 운율에 이끌려 각황전 앞까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각황전 남쪽 측면과 영산전 사이로 나있는 계단이 다음 단계의 공간으로 유도하기 때문이다.

긴 계단을 가파르게 오르면 희한하게 생긴 4사자석탑과 공양탑이 마주보고 있는 지역에 다다른다. 일명, 효대로서 화엄사의 창건 정신이 담겨있는 매우 상징적인 공간이다. 해탈문에서 시작하여 금강문과 천왕문을 거쳐, 보제루를 돌아, 대웅전 원통각 각황전을 잇는 긴 참배로의 최종적인 대상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참배동선이 구축된 것은 조선조 후기의 일로 추정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람의 배치형식이 크게 변화되었고, 이에 맞추어 진입과 참배의 동선을 재구성하고, 가람의 질서를 재편하였다. 그러나 기존 건물들과 시설물을 크게 손대지 않았다. 과거의 유산을 존중하고 보존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건축적 질서로 재편시킨 뛰어난 예를 화엄사에서 발견한다.

도움말/김봉렬(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경남도민일보 박종순 기자]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