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27)칠선계곡 가는 길

작성자 두류실
작성일 19-08-03 11:38 | 57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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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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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27>칠선계곡 가는 길] 오랜 비밀·시간 서린 ‘역설적 역사 공간’

승인 2019.08.02 16:18신문 3126호(2019.08.06) 16면


[한국농어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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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선교에서 바라본 본 칠선계곡 풍경. 용트림 치듯 포말지으며 흐르는 물길 사이사이 옥색 물빛이 선연하다.

‘국골·대궐터·추성·두지터’ 등
금관가야 마지막 왕 관련 지명
1400년 역사도 ‘이야기’ 머물러


태풍 ‘다나스’가 큰 비를 남기고 간 다음 날,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칠선계곡 들머리로 들어섰다. 지리산 제1교에서 바라보는 임천강 물줄기는 우레 같은 소리를 내며 노도처럼 흐르고 있다. 가슴이 서늘해지는 위압적인 모습이다. 추성리는 1400년도 훌쩍 뛰어넘는 옛 이름과 흔적들이 전해지는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이다. 하지만 이곳의 역사는 아직 ‘이야기’에 머문 채,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나라가 있던 골짜기라 하여 일컬어지는 ‘국골’, 왕이 머물렀다는 ‘대궐터’, 이곳의 마을 이름이 된 ‘추성(楸城)’이라는 산성과 ‘성안마을’, 그리고 식량을 보관하였다는 ‘두지터’ 등의 지명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이름들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과 관련되어 전해진다. 이웃 산청군의 구형왕릉, 왕산, 왕등재 등이 추성리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지리산의 산줄기로 이어지고 있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렇듯 추성리는 오래된 비밀의 시간들이 서려있는 ‘역설적 역사 공간’이다.  

그런데 칠선계곡을 비롯하여 지리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이곳의 산길은 생태보호나, 지정탐방로가 아닌 ‘비법정탐방로’라는 이유로 대부분의 길이 막혀있어 다닐 수 있는 길이 매우 제한적이다. 생태보호를 위해 입산을 금지해야할 곳은 엄격하게 출입을 제한해야 하겠지만, 삶터 주변 곳곳 옛사람들의 흔적을 잇는 역사탐방 루트에 대하여는 ‘입산허가제’라는 대안을 마련하여 활발한 답사가 이루어질 수 있게 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전 내내 오락가락 하던 비가 잠시 잦아들 무렵, 스틱 대신 우산을 챙겨들고 두지터로 향했다. 산길이 개방되는 마지막 지점인 ‘비선담’까지의 약 4km 남짓한 칠선계곡을 다녀오기 위해서이다. 두지터 가는 길은 칠선휴게소 약 200m 위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며 장구목을 오르게 된다.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가르며 두지터로 가게 되며, 정면 아래로는 용소로 이어지는 칠선계곡 하류가 아득히 내려다보인다. 길을 잠시 진행하면 오른쪽 산자락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작은 개울을 만나는데, 역광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우면서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내 각종 먹거리를 팔고 민박을 치는 두지터를 만난다. 담배창고 등 오랜 기억 속의 풍경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마을 앞을 서둘러 지난다. 글머리에서 언급하였듯 두지터는 군량미를 보관하던 식량창고가 있던 ‘뒤주’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두지교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길이 휘어지면서 칠선계곡 본류와 만난다. 엄청난 수량으로 용틀임 치며 포효하는 물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걸음 내내 따라왔던 갖가지 상념들이 산산조각 부서지며 날아가는 느낌이다. 곧 이어 칠선교 출렁다리를 걸어 계곡을 건너면 산자락을 에돌며 길이 이어진다. 오래전 지리산에 ‘하지마라(禁)’라는 경고문구가 거의 없던 시절, 천왕봉에서 칠선계곡으로 하산하며 이 길에서 겪었던 힘든 산행이 떠오른다. 하산을 종일 산행으로 잡았으니 운행거리와 시간 면에서 느긋한 산행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파르고 험한 상단부를 잘 내려와서는 정작 선녀탕에서 이 산허리로 이어지는 약 2km 길에서 식수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산자락 아래로 칠선계곡은 허연 속살을 보이며 흐르고 있었지만, 산비탈을 내려가서 식수 구하기가 쉽지 않아 그대로 진행하였는데, 엄청 길게 느껴지던 길에 기진맥진하며 고통스런 하산을 하였던 것이다. 그 후로 이 길을 지날 때에는 바짝 긴장을 하게 되던 기억이 새롭다.        

선녀탕 이정표가 있는 다리를 건너면 이내 옥녀탕이 나온다. 온 산자락을 삼킬 듯 포말 지으며 부서지는 물길 사이사이에는 눈 시린 옥색 물빛이 선연하다.  물을 가득 머금은 바위로 이어지는 길이 몹시 미끄럽다. 옥녀탕을 지나니 지난 밤 비바람에 쓰러졌는지 큰 나무가 길을 가로 막고 있어 겨우 헤쳐 나간다. 이렇듯 이 아름다운 칠선계곡은 나무도 바위도 수시로 그 모습을 바꾸는 야누스적인 모습을 지닌 곳이다. 비선교 출렁다리에 이르니 이제까지 참고 있었든 듯 빗방울이 툭툭 떨어진다. 주저 없이 산행을 접고 귀로에 오른다. 이때 엄청난 물소리로 가득 찬 산자락에 강렬한 이명처럼 대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칠선에서 올 여름 첫 매미소리를 듣게 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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