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24)와운마을 가는 길

작성자 두류실
작성일 19-07-08 13:14 | 658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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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섭의 지리산이야기 <24>와운마을 가는 길] 깊은 산 속 구름도 누워가는 마을

  • 승인 2019.04.23 18:50
  • 신문 3100호(2019.04.26) 15면


[한국농어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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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사골계곡. 뱀사골 신선길 탐방로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고목이 하늘로 빽빽이 치솟아
해와 달이 보이지 않던 곳
이제 관광 명소로 세상과 소통


연둣빛 기지개를 켜며 계절의 변화를 알리던 지리산은 이제 온 산자락에 희고 붉은 색의 붓질이 더해지며 화사한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4월의 하순이 시작되는 날, 찬란한 지리산의 봄을 만나기 위해 뱀사골로 향했다. 뱀사골 입구에 있는 남원시 산내면 부운리 반선마을에 차를 주차하고 반선교를 건넌다. 이 다리 아래로 뱀사골과 달궁계곡의 물길이 만나며 만수천을 이룬다. 함양으로 흘러들어 낙동강의 수계를 이루는 물길이다. 오늘은 ‘와운 옛길’을 거쳐 산중 깊숙한 700m 고지에 있는 와운마을을 들렀다가, 탐방로(뱀사골 신선길)를 거쳐 반선으로 내려서는 약 6km에 이르는 길을 둘러보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구름 속에 떠있는 마을(浮雲)에서 구름도 누워가는 마을(臥雲)을 다녀가는 길이다.

뱀사골 탐방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여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야영장으로 들어선다. 눈부신 연록의 숲과 계곡 풍경에 이끌려 자연관찰로를 따르다보면, 어느새 길은 계곡과 멀어지고 산허리를 두르며 나있는 옛길을 걷게 된다. 모처럼 봄의 숲에서 만나는 말발도리, 산괴불주머니 등 풀꽃들에 눈길을 주며 걷는다. 완만한 오름길이 끝날 즈음, 거대한 고사목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북두재를 만난다.

1611년(광해3), 지금보다 봄이 더욱 무르익어 가던 때인 음력 3월 29일(양력 5월 11일), 지리산 유람을 나선 남원부사 유몽인 일행은 다음날 이곳을 들어선다. ‘길을 가다보니 푸른 소나무는 그늘을 드리우고 철쭉은 불타듯 붉게 피어 있었다.’라며 풍경에 취한 채 반선 인근에 있었던 내원암에 들어선 후, 계곡을 거슬러 올라 정룡암이란 암자에서 하룻밤을 머문다. 그런데 뜻밖에 이곳에서 조선중기의 청백리 옥계 노진의 흔적을 만나는데, 유몽인은 그의 유두류산록에 ‘정룡암 북쪽에 한 채의 집이 있었는데. 이 암자의 승려가 말하기를, “이곳이 바로 판서 노진의 서재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옛날 옥계 노진 선생이 자손들을 위해 지은 것이다. 선생도 봄날의 꽃구경과 가을날의 단풍놀이를 하러 왔으며, 흥이 나면 찾은 것이 여러 번이었다’라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연결고리가 발견된다. 1580년 4월 초순, 옥계 노진의 문하생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도탄 변사정은 만수천변 도탄에 살다가, 역시 후일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우는 김천일, 정염 등과 함께 이곳을 거쳐 지리산 유람을 하였다. 잘 알려진 천왕봉이나 쌍계사로 바로 들어서는 유람길을 택하지 않고, 깊숙한 뱀사골로 들어와 산자락을 에둘러 다시 함양 마천으로 내려선 후, 천왕봉으로 오르는 특이한 코스를 택한 것이다. 아무래도 유몽인은 변사정의 유람코스를 따른 듯하다.

그리고 유몽인은 다음날 ‘새벽밥을 먹고 월락동(月落洞)을 거쳐 황혼동(黃昏洞)을 지났다. 고목이 하늘에 빽빽이 치솟아 올려다봐도 해와 달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밝은 대낮일지라도 어두컴컴하기 때문에 월락동, 황혼동이라 부른다’는 기록을 남기며 후일 그이처럼 지리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마치 숙제라도 내듯 몇 곳의 이름을 툭 던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위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변사정과 유몽인의 동선으로 볼 때, 아마도 오늘 지나가는 옛길 어딘가를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북두재를 넘어 와운마을로 들어선다. 한때 깊은 산속 별유천지 무릉도원을 이루었을 마을은 이제 뱀사골 관광의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고, 마을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더욱 애쓰는 모습이다. 마을 뒤 수호신처럼 서있는 소나무 ‘천년송’을 둘러보고 와운교로 내려선다. 뱀사골 계곡을 따라 나있는 ‘뱀사골 신선길’로 들어서자, 산자락에서부터 줄곧 따라다니던 산멀미 같은 설레임에 계곡의 짙푸른 물빛이 더해지며 걸음은 점점 더디어진다.

/‘협동조합 지리산권 마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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